섹시한 ‘성인식→비공개 결혼식’ …가수 박지윤♥조수용 카카오 공동대표 혼인. ‘연봉만 8억’ 재산 프로필 나이 학력 이혼 이유 재혼 전 부인(아내) 조수영 리즈시절 근황 ­

박지윤과 결혼한 조수용 대표 ‘연봉만 8억’ 한달 월급이 일반인 연봉의 2배​​22일 연예 관계자 및 IT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두 사람은 3월 말 가족과 친지, 가까운 사람들만 초대해 조용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을 외부에 알리지 않았던 까닭에 예식은 차분하고 경건하게 진행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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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조수용 대표가 발간하는 월간 ‘매거진 B’의 팟캐스트 ‘B캐스트’를 함께 하며 친분을 쌓았다. 박지윤은 매거진 B의 팟캐스트 진행을 맡았고, 조수용 대표도 출연해 디자인과 마케팅, 크리에이티브 디렉팅 등의 분야를 다루면서 마니아층을 만들었다. 이후 두 사람은 디자인과 예술, 음악과 영화 등에서 서로 공통된 관심사를 발견하면서 연인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2년여 교제 끝에 결혼에 이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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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2017년 5월 두 사람의 교제 소식이 전해졌으나, 박지윤 측은 “함께 일하는 관계로 친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연인 관계는 아니다”고 부인한 바 있다. 이후 두 사람은 예술적 감수성과 감각을 공유하며 서로를 솔메이트로 여기며 사랑을 키워온 것으로 알려졌다.​박지윤은 12살때인 1993년 하이틴 잡지 모델을 계기로 이듬해 해태제과 광고모델이 됐다. 1994년SBS ‘공룡선생’에서 아역으로 활동했고, 1997년 ‘하늘색 꿈’으로 가수로 데뷔했다. 이후 ‘성인식’ ‘스틸 어웨이’ ‘가버려’ 등을 발표하며 아이돌 스타로 큰 인기를 누렸다. 뮤지컬 ‘미녀와 야수’ ‘클레오 파트라’ 등에도 출연했다.

그러다 가수로서 약 6년의 공백기를 가졌고, 2009년 독자회사 박지윤 크리에이티브를 설립, 자작곡을 담은 7집 ‘꽃, 다시 첫 번째’를 발표하면서 포크 음악 계열의 싱어송라이터로 다시 주목받게 됐다. 2017년에는 20주년을 맞아 사진집을 결합한 9집을 내고 20명의 오케스트라 연주자와 공연도 벌였다. 이후 가수로서 꾸준히 공연을 하면서, 사진작가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두 사람은 지난 3월 가족과 친지, 가까운 사람들만 초대해 서울 모처에서 조용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카카오 측도 “뮤지션 박지윤과 지난달 가족들을 모시고 비공개로 결혼식을 올렸다”고 공식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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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박지윤은 1993년 초등학생 때 하이틴 잡지에 실리며 얼굴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초등학생의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하이틴 잡지에 실렸을 정도로, 뚜렷한 인상과 성숙한 외모로 관련 업계의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었다. 11살에 찍은 해태제과 광고를 즈음하여 전문적인 연예인으로 활동하게 되었는데, 당시 11살 정도의 초등학생이던 그녀가 마지막 승부로 뜨거운 인기를 불러일으키던 20대의 장동건과 커플 느낌으로 잡지촬영에 임한 것도 꽤나 유명한 사실이다. 이후 꾸준히 아역 탤런트 활동과 잡지 촬영을 병행하며 연예계 생활을 지속하다 1994년 SBS의 공룡선생 2기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방송가로도 진출하게 된다.

이후로는 주로 모델 쪽에서 활동하게 된다. 쭉 뻗은 키와 성숙한 외모, 그리고 대표적인 고양이상 얼굴로 이미 중학생 시절 포스터에도 등장했을 정도. 이후 가수활동을 시작하게 되고, 그 여세를 몰아 화제의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에 출연하게 된다. 당시 박지윤의 상대역은 제대(전역) 이후의 이휘재였는데, 남자셋 여자셋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우희진이나 이제니 등에 비해선 그리 인상적인 캐릭터를 남기지 못해 둘 다 일정 시간이 흐른 후 극에서 하차하게 된다.​그렇지만 가수 데뷔 자체는 성공적이었고 이후 박진영의 프로듀스를 통해 발표된 성인식은 시대의 섹시 아이콘으로 불릴 정도로 인기를 얻게 된다. 이후로도 배우로서의 행보보다는 가수로서의 행보가 강조되는 편.​두 사람은 조수용 대표가 발간하는 월간 ‘매거진 B’의 팟캐스트 ‘B캐스트’를 함께 하며 친분을 쌓았다. 박지윤은 매거진 B의 팟캐스트 진행을 맡았고, 조수용 대표도 출연해 디자인과 마케팅, 크리에이티브 디렉팅 등의 분야를 다뤘다. 이후 두 사람은 서로 공통된 관심사를 발견하면서 연인으로 발전했고 2년여 교제를 거쳐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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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는 2018년 3월 카카오가 293억원에 인수해 카카오의 자회사가 됐다. 2016년 10월 조수용 대표는 카카오로 합류해 브랜드 디자인을 총괄했다. 카카오는 2018년 3월 주주총회를 통해 조수용 당시 공동체브랜드센터장을 카카오 공동대표로 공식 임명했다. 지난 1일 카카오는 ‘2018년 사업보고서’를 통해 조수용 대표에게 급여로 5억8600만원, 상여로 2억5100만원 등 총 8억3700만원을 지급했다고 밝혔다.​앞서 2017년 5월 두 사람의 교제 소식이 전해졌으나, 박지윤 측은 “함께 일하는 관계로 친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연인 관계는 아니”라고 부인한 바 있다.

박지윤은 12살때인 1993년 하이틴 잡지 모델로 데뷔했으며 1997년 ‘하늘색 꿈’을 통해 가수로 데뷔했다. 지난 2009년에는 독자회사 박지윤 크리에이티브를 설립해 자작곡을 담은 7집 ‘꽃, 다시 첫 번째’를 발표하면서 포크 음악 계열의 싱어송라이터로 주목받았다. 2017년에는 가수 데뷔 20주년을 맞아 사진집을 결합한 9집을 내기도 했다. ​한편 조수용은1999년 서울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 학사/석사 과정을 마치고, 이후 2003년까지 프리챌 디자인 센터장을 역임했다. 2003년부터 2010년까지 NHN에서 네이버 디자인과 마케팅을 총괄했으며 최종 직책은 이사였다. 마지막 프로젝트로 NHN사옥 그린팩토리 건축을 총괄했다. 2010년 12월 주식회사 JOH(제이오에이치)를 설립하여 대표이사 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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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매월 하나씩 브랜드를 소개하는 광고없는 월간지 ‘매거진B’를 창간했으며, 2012년 7월 건강식당 ‘일호식’ 을 2013년 4월 아메리칸 다이닝 ‘세컨드 키친’을 개업했다. 2013년 2월 ‘Ed Bag’ 이라는 이름의 가방브랜드를 런칭하고 국내외에 판매중이다. 2014년 8월 액티브 주스 바 ‘트라이바’를 개업했다.​2014년 영종도에 위치한 Nest hotel, 여의도에 위치한 Glad hotel 의 브랜딩, 건축, 인테리어, 가구 등 브랜딩과 디자인을 총괄했으며, 두개 호텔 모두 최초로 designhotels.com에 리스팅 되었다.

2016년 카카오 브랜드 총괄 부사장으로 영입되었으며, 2018년 3월 카카오 대표이사로 선임되었다.​조수용 대표는 포털사이트 네이버 검색창을 초록창으로 디자인한 사람으로 잘 알려진 디자인, 마케팅 전문가다. 서울대학교와 동 대학원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한 뒤 포털사이트 프리챌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며, 2003년 네이버 창립 초기부터 함께 했다.

조수용은 2010년 브랜드 디자인 컨설팅 회사 JOH(제이오에이치)를 세웠고, 이 회사를 통해 공간 임대사업과 일호식, 세컨드키친 등 음식점도 운영했다. 국내 최초로 브랜드 다큐멘터리 잡지 ‘매거진B’를 창간했다. 지난해에는 우아한형제들과 손잡고 배달의 민족 잡지 ‘매거진F’를 창간했다.카카오에서 브랜드 디자인총괄 부사장과 공동브랜드센터 센터장을 지낸 뒤 작년 3월 여민수 대표와 함께 공동 대표에 선임됐다.​조수용 대표의 이혼 이유가 정확히 알려지진 않았지만, 조수영 전 (아내)과 사이에 두 자녀를 둔것으로 알려졌다. 전부인 조수영 대표는 현재 조수영이 설립한 회사 JOH의 대표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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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 인터뷰에서는 10년째 동안 피부를 유지하고 있는 노하우에 대해 밝혔는데, 비결은 깐깐한 화장품 선택과 5단계 딥클렌징. 화장품 하나를 골라도 성분을 살펴보고 깐깐하게 고르는데, 방부제가 색소 등이 들어가지 않은 제품을 선호한다고. 향을 즐기고 싶을 때에는 무향의 수분 크림에 아로마 오일을 섞어서 바르는 식으로 응용한다. 또 바르는 것보다 지우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 5단계로 딥 클렌징하는 것이 그녀만의 비결. 여기서도 포인트는 폼 클렌징을 사용하지 않는 것인데, 뽀득뽀득하지는 않지만 얼굴이 당기지 않고 뾰루지도 올라오지 않아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피부 비결 못지 않게 궁금한 몸매 비결에 대해서는 매일 유산소 운동을 빠지지 않고 일주일에 3~4회씩 근육 운동도 실시한다고 밝혔다. 가장 재미있는 운동법으로는 스쿼트와 데드리프트를 꼽았는데, 무리하게 근육을 만드는 것보다는 몸에 활력을 주는 정도로만 건강하게 운동하는 것은 선호한다고 이야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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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박지윤은 지난 1997년 12월 1집 타이틀곡 ‘하늘색 꿈’으로 데뷔했다. 이후 ‘아무것도 몰라요’, ‘소중한 사랑’, ‘성인식’, ‘환상’, ‘난 사랑에 빠졌죠’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다.​또 박지윤은 지난 2016년 소속사를 떠나 1인 기획사를 세웠으며 지난해 데뷔 20주년을 기념해 라이브 실황 앨범을 발표, 팬들과 만나고 있다. ​조 공동대표는 지난해 3월 카카오 공동대표로 취임했다. 조 공동대표는 IT 업계의 브랜딩·디자인 전문가로, 네이버에 몸담을 당시 네이버의 초록생 검색창을 디자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이미숙의 배드신 등에서 박지윤이 한 인터뷰를 보면 소속사와의 결별에 대한 결심 자체는 계약 만료를 즈음하여 자연스럽게 불거진 것으로 보인다. 4집 성인식 이후로는 그만한 파급력을 보여주지 못했던데다, 6집의 음반성적 부진 외에도 다양한 사안이 맞물리며 더 이상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 ​박지윤은 당시 상황에 대해 “열심히 뛰어왔는데 식구처럼 생각하지 않고 내버려둔 게 있어서 개인적으로 섭섭한 마음이 있었다” 며 “그쪽에서 별로 나를 원하지 않았고 재계약 이야기도 오갔지만 자연스럽게 안 하게 됐다”, “(그런 이미지를 만든) 그 회사도 싫었다”며 불화를 인정했다. 더군다나 이후 박진영 측이 2억여원의 계약위반과 관련한 소송을 걸게 되면서, 양자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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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박지윤은 과도한 섹시 컨셉으로 활동하는 과정에서의 고충을 토로하기에 이르렀다. 성숙한 이미지로 활동했던 박지윤이었지만 이 시기까지의 그녀의 나이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불과했으며, 그녀는 이 시기를 기점으로 더 이상 가수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졌을 정도였다.​결코 아름답기만한 이별이 아니었기에, 성인식으로 대표되는 JYP 시절을 그녀의 팬들은 그다지 곱게 보지 않는다. 오죽하면 그 시기 즈음 불거졌던 박지윤의 루머를 JYP 측이 의도적으로 퍼뜨렸다는 소문이 있었을 정도

또한 성인식에서 시작되어 할줄알어에 이르기까지 이전의 그녀와 상충하는 자극적인 컨셉이 연속되었던 점도 크게 작용했다. 이전 그리고 이후 박지윤의 음악과 그녀의 실제 성격은 JYP시절의 컨셉과 정면으로 대치된다. ​그렇기에 팬들은 당시의 박지윤을 박진영 내면 속 아니마를 대신 구현한 대리인으로 느끼게 하였고, 박진영이 자기 입맛에 맞게 자기 휘하의 가수들을 변신시키는 ‘박진영화’ 가 얼마나 대상에게 부담을 주었는지에 대한 사례가 되었다. 기존의 팬들은 너무 변해 버린 박지윤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등을 돌리게 되었고, 그녀의 자극성에 찾아왔던 팬들은 또 다른 자극적인 것을 찾아 떠나가게 되는 역효과를 낳았다는 것이었다.

박지윤 본인이 JYP식 프로듀싱을 달가워 하지 않았다는 점도 그 근거이다. 박지윤이 이 당시 얘기를 잠깐 언급할 때, 자신은 정말 내성적이고 소극적인데 억지로 아닌 척하고(발랄 혹은 섹시로) 활동했던 지난 날이 너무나 힘들었다고 얘기한 바 있다. 심지어 노래 자체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을 정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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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박지윤이 박진영의 뮤즈로서 명실상부한 탑가수의 자리로 올라서게 된 점은 분명하다. 3집 당시 박지윤은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고, 당시까지 파격의 아이콘이었던 박진영은 그러한 변화에 최적의 모델이자 리더였을 것이다. 비록 가수 본인이나, 그녀의 이미지를 형성해왔던 음악과 상충했을지언정 박지윤은 성인식을 통해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섹시 아이콘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으며, 그에 수반한 상업적 성공 역시 뒤따랐다. ​20대 초반의 아직 음악적 정체성과 역량이 성숙되지 않은 박지윤이었기에 프로듀서의 역할은 절대적일 수밖에 없으며, 박지윤의 강점을 잡아내고 상업성과 대중성 측면에서 그를 십분활용한 박진영은 프로듀서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5집, 6집은 상업적으로 실패했을지언정 최소한 논란과 화제는 되었었다. 또한 “난 사랑에 빠졌죠”나 “환상” 등의 서정적인 히트곡도 그녀에게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곡들이다.

그러나 가수 개인의 정체성이 고려되지 않은 프로듀스는 결과적으로 그녀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형태로 작용했고, 이 상황에서 발생한 하락세와 끝없는 논란은 결국 그녀가 JYP와 결별하는 수순으로 귀결되었다. 4집에 뒤 이은 5집의 남장 컨셉이나 6집의 지나치게 소모적인 섹시 컨셉은 박지윤 본인도 원하지 않는 방향이었고, 성인식의 파격성을 이미 학습한 대중들에게도 식상함을 안겨준 프로듀싱이었다.​JYP와 결별한 이후의 박지윤은 연기자로 활동하게 되는데 김건모의 뮤직비디오와 드라마 신인간시장 등에 출연했지만 그리 큰 반향을 이끌어 내지는 못한다. 여기에 더해 음주운전과 소송, 루머 등으로 인해 활동이 어려워지게 되고 지쳐있던 박지윤은 6년에 달하는 긴 공백기를 가지게 된다.​후에 박지윤은 미스틱89의 소속사 식구들과 함께 박진영의 재혼 결혼식에 방문하여 축가를 부르게 된다. 묵은 감정이 어느 정도 해소된 모양.

‘조수용’ 카카오 공동대표 어떤 사람? 입 벌어지는 집 인테리어 ‘화제’오늘(22일) 매체를 통해 가수 박지윤과 조수용 카카오 공동대표가 지난 3월 결혼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조수용 공동대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조수용 카카오 공동대표이사는 1974년생으로 프리챌 디자인센터 센터장을 거쳐 NHN에서 마케팅과 디자인 총봘 부문장을 맡은 바 있다.​또한 국내에서 처음으로 브랜드 다큐멘터리 잡지인 ‘매거진B’를 발행했으며 ‘제이오에이치(JOH)’의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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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카카오에서 브랜드 디자인 총괄 부사장과 공동브랜드센터 센터장을 지낸 뒤 여민수 대표와 함께 카카오 공동대표이사직을 맡고 있다.​조 대표이사는 과거 사내연애로 만난 A씨와 결혼했지만 이혼했으며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다음은 파리의 <엘르 데코> 인터내셔널팀이 취재한 아시안 홈. 한국에서 개인의 취향이 가장 돋보인 공간으로 포착된 JOH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수용의 집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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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과거 모 매체를 통해 공개된 조 대표이사의 집 또한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집 안에는 친구들과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는 작업실 같은 공간 또한 꾸며져 있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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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박지윤과 조수용 대표는 월간 ‘매거진 B’의 팟캐스트 ‘B캐스트’를 함께 하며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수용 대표는 2011년 11월 국내 최초의 브랜드 다큐멘터리 매거진 ‘매거진 B’를 창간했다. 매월 하나씩 브랜드를 소개하는 광고 없는 월간지를 표방하고 나서 화제를 모았다.

두 사람은 팟캐스트에 함께 출연하며 사랑을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조수용 대표가 발간하는 매거진 B의 팟캐스트 버전에 박지윤이 MC를 맡았고, 조수용 대표도 출연해 함께 디자인과 크리에이티브 디렉팅, 마케팅 등을 이야기하며 많은 청취자를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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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82년 1월 3일(나이 37세)서울특별시 송파구 방이동신체 키 172cm, 46kg, O형학력​세륜초등학교 (졸업)오륜중학교 (졸업)창덕여자고등학교 (졸업)경희대학교 포스트모던음악학과 (학사)경희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 대중예술전공 (석사)데뷔 1994년 해태제과 CF소속 박지윤크리에이티브종교 개신교(장로회)​